불안

2017년 1월 출간돼 단기간 40만 부가 읽힌 베스트셀러

40개국에 작품이 소개된 터키 유명 작가 리반엘리의 신작

“한때는, 나도 사람이었어, 언니.”

이슬람 무장단체 ISIS에 ‘사용’된 여자, 그를 ‘사랑’한 남자
단기간 40만부 판매, 터키는 『불안』에 빠졌다

이 이야기는 이브라힘이라는 현직 기자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이브라힘은 신문사 편집회의에 올라온 사건들 중에서, 어린 시절의 고향 친구가 미국의 플로리다에까지 가서 살해당한 특이한 사건이 있는 걸 발견하고, 취재를 위해 지금 그의 시신이 돌아와 있는 고향 마르딘으로 향한다.

터키는 남한의 대략 여덟 배에 육박하는 넓은 땅을 가진 나라다. 동서로 두툼하게 길게 뻗어 있는 이 땅은 서쪽으로는 불가리아 및 그리스와, 동쪽으로는 죠지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리고 북으로는 흑해, 남으로는 지중해에 접하고 있다. 동쪽은 중동의 사막문화에 가깝고, 서쪽은 유럽 문화에 더 가까운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기후도 서쪽이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라면 동쪽은 엄혹한 사막과 고원지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마르딘은 동쪽 끝, 이라크와 시리아에 맞닿아있는 사막고원지대의 소도시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아있는 현장이자 지금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발호한 이슬람 근본주의세력 아이시스의 영향력이 깊이 침투해 있는 지역이다.

유년시절에 떠난 후 처음으로 찾아간 고향 마르딘은 사막의 붉은 모래바람으로 이브라힘을 맞이한다. 그 모래바람은 이브라힘이 어린 시절에 맞던 것과 똑같은 것이지만, 고향 마을의 다른 것들은 오히려 어린 시절보다도 더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이슬람의 율법주의는 더욱 엄격해져서 앗시리아 기독교인의 상점에 가지 않으면 와인 한 병 마음대로 사기 어렵고, 밤이 되면 아이시스를 추종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이 두려워서 모두들 바깥 출입을 삼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브라힘이 기억하는 고향 역시 신실한 믿음을 가진 무슬림들의 땅이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그 지역에 여전히 잔존하는 여러 고대종교들을 관용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믿음이었다. 이브라힘은 이렇게 말한다.

“그 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앗시리아인, 무슬림, 유대인, 조로아스터교도, 파시교도-이 다른 사람들의 종교가 기념하는 축일에 학교나 시장에서 만나면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화가 나 있고 다른 종교를 환영하지 않는 종류의 이슬람이, 마치 그림자처럼, 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관용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독실한 무슬림이자 의사였던 그의 친구는 시리아에서 아이시스에 의해 성노예로 잡혀 있다가 탈출해온 이교도 에지디 족의 여성 멜렉나즈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시도하다가 아이시스의 추종자들에게 총격을 당했고, 간신히 살아남은 뒤 형들이 살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로 옮겨갔다가 거기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브라힘은 친구 후세인과 멜렉나즈의 흔적을 찾아 사천 년 전에 에지디들이 숭배하던 태양신의 사원으로 세워진 후 천 육백 정도 전부터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의 수도원이 된 다륄자파란에 찾아갔다가 그곳의 수도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웃지 마세요, 진지하게 하는 얘깁니다. 이 지역에서는 천육백 년 전이란 건 바로 어제와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그 수도사는 곧이어 이렇게 말한다.

“문에 쓰인 글귀 혹시 보셨나요? 솔로몬의 시편들입니다. 우리말, 아람어로 쓰인 거죠. 우리의 성스러운 조상들이 이 건물을 지었습니다, 알라의 축복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예, 알라의 축복. 우리는 터키어로 말할 때는 그분을 알라라고 부릅니다. 아람어에서는 엘리라고 합니다. 엘리, 엘로이, 일라, 알라, 모두 하나이고 같은 존재 아닐까요? 우리를 창조한 한 존재의 이름인 겁니다. 우리의 선지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마지막 말씀을 아람어로 하셨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대해서는 좀 아실 테지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신이여, 신이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오늘날의 이 수도원에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말, 성경에 쓰인 그 언어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존재에 대한 같은 신앙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공유하고 있는데, 이름이 무슨 상관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브라힘이 만난 또다른 친구의 아버지이자 이슬람 율법학자인 노인은 아이시스의 발호를 단순히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좀 더 멀리, 좀 더 깊은 곳에 가 닿아있다. 그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얘야, ‘하레세가 무슨 뜻인지 아니? 고대 아랍에서 쓰던 말이지. 탐욕, 욕심, 야심, 게걸스러움, 이런 종류의 말들의 뿌리에 놓여 있는 말이야. 그래, 그게 바로 ‘하레세’야. 낙타를 일컬어 사막의 배라고 하지? 이 축복받은 짐승은 워낙 강인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몇 주 동안이고 사막을 걸어갈 수 있지. 그런데 이놈들은 모래 속에서 자라는 한 가지 특정한 종류의 엉겅퀴를 아주 좋아해. 그래서 이걸 만날 때면 걸음을 멈추고는 뜯어먹기 시작하는데, 그걸 씹는 동안 억센 가시가 입안을 온통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놓게 되지. 이때 입 속에서 흐르는 피의 찝찔한 맛이 엉겅퀴의 맛과 섞이게 되는데, 낙타는 바로 이 맛을 너무도 좋아해. 낙타는 씹으면서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면서도 씹지. 낙타는 이거라면 한도끝도 없이 먹으려 들어. 억지로 멈춰주지 않는다면, 아마 과다출혈로 죽을 때까지 계속 먹을 거야. 이게 바로 ‘하레세’야. 내가 이미 말했지만, 이게 바로 탐욕, 욕심, 게걸스러움을 일컫는 우리 말의 뿌리지. 그리고 이게 바로, 얘야, 중동이 걸어왔고 지금도 가고 있는 길이야. 우린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서로를 죽여왔어. 모르는 새에 스스로를 죽여온 셈이지. 우린 우리 자신의 피에 취해 있는 거야.”

평생을 이슬람 연구에 바쳐온 노인의 입에서 나온 이 절망적인 인식은 이 피에 취한 무리의 성노예로 지내다가 절벽에서 몸을 던진 어린 이교도 소녀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마지막 단 하나의 문장에서 보다 극적으로 요약된다.

“언니, 나도 한 때는 사람이었어.”

그러나 ‘하레세’는 더이상 중동 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자기 피를 흘리더라도 씹어야 하고, 자기가 흘리는 피맛에 취해서 자기자신도 죽을 때까지 씹어야 하는, 모두가 죽을 때까지 중단되지 않을 이 혐오의 광신은 9.11을 거치면서 미국 땅에도 급속하게 퍼져나갔고, 아이시스의 ‘하레세’를 피해 도망친 후세인은 가장 안전할 것 같았던 미국 플로리다의 어느 소도시에서 무슬림을 혐오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역시 “나는, 한 때 사람이었어.”라는 한 문장이었다.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이브라힘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그는 살아남아 대도시 이스탄불에 던져진 멜렉나즈를 만나 그녀를 도움으로써 사람이란 존재가 아직 지상에 살아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그리고 자기자신이 아직 사람임을 입증하려고 하지만, 멜렉나즈는 매정하게 그의 도움을 거절한다. 이브라힘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이 얼마나 피투성이 지옥인지 깨닫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빠져나갈 길은 자기 힘으로 찾아내야 한다. 멜렉나즈는 그녀가 섬기는 천사 타부즈와 마찬가지로 지옥으로의 추락을 경험한 존재로 그의 앞에 나타났지만, 그 천사는 여전히 지옥에 들어있고, 따라서 이브라힘을 구원해 줄 수 없다. 이브라힘은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길, 사람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어디에 있을까.

*

줄푸 리반엘리Zülfü Livaneli는 터키에서 정치, 외교, 음악,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지만, 우리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름이다.

리반엘리는 1946년에 터키의 중부 소도시 일긴에서 태어나 수도 앙카라에서 주로 성장했다. 리반엘리는 어릴 때부터 터키의 전통 현악기인 사즈를 배웠고 음악인으로서의 활동을 먼저 시작했다. 리반엘리는 일찍부터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사상적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했고, 71년 군사 쿠데타 이후 체포와 투옥을 반복해서 겪은 뒤 마침내 유럽으로 망명했다. 스톡홀름, 파리, 아테네, 뉴욕 등지로 이어진 이 망명생활은 84년에야 마무리되었는데, 망명초기인 73년에 발표한 앨범 터키 혁명가요집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망명기간 동안 그는 열 개가 넘는 음반을 내놓았고, 82년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길Yol>을 비롯한 여러 영화음악의 작곡가로서도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엘리아 카잔, 아서 밀러, 제임스 볼드윈, 피터 유스티노프 등의 감독/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단편소설집을 내놓기도 하는 등, 서서히 음악 분야를 넘어 종합예술인으로서의 면모를 구축해 나갔다. 귀국 후에는 그리스와의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등 평화주의적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지만, 싱어송라이터로, 작가로, 또한 영화감독으로도 쉼없는 창작활동을 펼쳐왔다. 그의 영화 <무쇠땅, 구리하늘Iron Earth, Copper Sky>은 87년 칸느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고, 2002년에 터키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후 모두 열한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2007년에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장편소설 <더없는 행복Bliss>은 이슬람 문화권 작가로는 처음 본격적으로 명예살인의 문제를 다루면서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시장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불안』 은 2017년에 1월에 발간되었다. 그의 아홉 번째 소설이다. 이 책은 발간 이후 터키의 정교분리를 위협하는 일련의 정치적 사태 속에서 포스터의 전시가 금지되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4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가면서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